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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독립 음반사들이 클래식 음반 판도 바꾼다
격동하는 음반시장
英 BBC 뮤직 어워드 EMI 등 메이저 음반사 수상작 없어 …
거대음반사 불황 주춤 소규모 독립음반사 ‘춘추 전국시대’ …
‘1인 음반사’로 음악인 창의성 발휘하기도
이달초 영국에서 열린 ‘BBC 뮤직 어워드’. 기악과 성악, 오페라와 DVD 등 10개 분야로 나눠 한 해 최고의 클래식 음반을 선정하는 상이다. 영화의 ‘아카데미 상’이나 대중 음악의 ‘그래미 상’처럼 클래식 음악계에서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올해 이변이 일어났다. 도이치그라모폰(DG)·EMI·소니BMG·워너뮤직 등 기존의 메이저 음반사들이 한 편도 수상작을 내지 못한 반면에, 독립 음반사와 소규모 음반사의 작품들이 10개 부분을 모두 휩쓴 것이다. 이를테면 인디 밴드가 그래미 상을, 독립 영화가 해외 영화제를 독식(獨食)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핀란드의 소프라노 소일레 이소코스키(Soile Isokoski)가 시벨리우스의 곡을 녹음한 핀란드 음반사 온딘(Ondine)의 음반이 ‘올해의 음반’과 ‘성악 부문’ 등 2개 부문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성악가의 낯선 음반이지만, BBC 뮤직 매거진은 “핀란드의 이 가수보다 핀란드의 음악을 더 탁월하게 해석할 수는 없다”고 평했다. ‘기악 부문’도 네덜란드의 명문 악단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가 자체 설립한 음반 레이블 ‘RCO-Live’가 수상했다. 반면 내로라하는 EMI는 성악 부문, DG는 실내악 부문, 워너뮤직은 오페라 음반 부문 등에서 각각 후보작을 내는데 그쳤다.
클래식 음반계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반 세기 이상 절대 강자의 위치를 누려온 거대 음반사들이 불황으로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소규모 독립 음반사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싹을 틔우며 사실상 ‘춘추 전국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카라얀과 번스타인 같은 명 지휘자들이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하면, 오케스트라는 지휘자를 쫓아가 녹음하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상황은 역전됐다. 악단이 지휘자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딴 살림’을 차려서 지휘자를 껴안고 가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국의 런던 심포니(LSO)와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SFS)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악단의 약칭을 딴 별도의 음반 레이블을 설립해서 자체 제작한 음반을 전 세계에 배급한다.
올해 BBC 뮤직 어워드에서도 런던 심포니가 시벨리우스의 ‘쿨레르보’ 음반(지휘 콜린 데이비스)으로 ‘합창 부문’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지휘 마리스 얀손스)으로 ‘기악 부문’을 사이 좋게 나눠가졌다.
‘아티스트와 음반사의 공존’을 모토로 내걸고, 지난 2002년 설립된 영국 음반사 아비(AVIE)는 최근 독특한 사업 방식으로 음악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음악가에게 음반 프로그램을 선정할 수 있는 권한과 저작권을 폭넓게 보장한다.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음악을 하라”는 이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최근 내한한 영국의 하프시코드 연주자 겸 지휘자 트레버 피노크(Pinnock)를 비롯해 지휘자 세미온 비쉬코프(Bychkov) 등이 둥지를 틀었다.
아예 음악가가 ‘1인 음반사’를 만드는 경우도 늘고 있다. 소프라노 바바라 헨드릭스(Hendricks)는 최근 ‘아르테 베룸(Arte Verum)’이라는 음반 레이블을 세우고 최근 슈만 가곡집과 스페인 가곡집을 발표했다. 그는 “기술 발전의 덕택으로 음반을 제작할 때에도 음악인 스스로의 창의성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영국의 평론가 리처드 모리슨은 “음반 업계가 불황에 빠졌다고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조금만 눈을 돌리면 더 많은 음반사를 통해 더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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